한국어 키보드의 스페이스바 양옆에는 영문 키보드에 없는 키가 두 개 있다. 왼쪽이 한자 키, 오른쪽이 한/영 키다. 날마다 누르는 이 두 키는 언제 생겼을까. 찾은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것은 1988년 6월의 신문 기사로, 정부 행정전산망용 키보드의 한/영 키와 한자 키를 말한다. 한글 윈도우 95가 판매에 들어간 1995년 11월 28일보다 7년 넘게 앞선다. 이 글은 관보와 표준 본문, 그때의 신문과 설명서를 따라 두 키에 대해 확인되는 것과 확인되지 않는 것을 나눠 적는다.
왜 바꿔 줘야 하나: 글자 자리를 함께 쓰는 자판
두벌식 자판은 한글 자모를 영문 글자와 같은 키에 올려 둔다. 그래서 같은 키를 눌렀을 때 한글이 나올지 영문이 나올지를 정해 주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두벌식 배열이 정해진 과정은 세벌식과 두벌식의 차이에서 다뤘다.
이 배열을 정한 국가 표준이 1982년 6월 17일에 제정된 '정보 처리용 건반 배열'이다. 처음 번호는 KS C 5715였고, 1997년 8월 정보 기술 분야 표준의 번호 체계가 바뀌면서 KS X 5002가 되었다. 표준은 무엇을 묶어 두고 무엇을 열어 두는지를 이렇게 적는다.
| 항목 | KS X 5002의 내용 |
|---|---|
| 영문자와 한글 자모 26자(기본 자모 24자와 ㅐ, ㅔ) | 지우거나 옮길 수 없다 |
| 쌍자음 다섯 자와 ㅒ, ㅖ | 권장 위치만 둔다 |
| 숫자와 기호 | 그림으로 보이되 장치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 |
| 기능 키(Shift처럼 글자를 찍지 않는 키) | 종류도 위치도 정하지 않는다 |
| 한글과 영문의 전환 | 한영 겸용 건반에는 한글/영문 모드 지정 키를 둔다 |
| 한자 | 나오지 않는다 |
전환 키는 참고 항목과 그림에 나온다. 참고 항목은 한영 겸용 건반에 한글/영문 모드 지정 키를 두어 자모와 영문자를 골라 입력하게 한다고 적는다. 기능 키의 권장 위치 표에는 '한/영 선택'이 B 12 자리로 적혀 있고, 그림에도 오른쪽 Shift 바로 옆에 '한/영'이라고 적힌 키가 그려져 있다. 지금처럼 스페이스바 옆이 아니라 Shift와 같은 줄이다. 맨 아랫줄에는 스페이스바만 그려져 있다. 한자라는 낱말은 어디에도 없다.
표준의 해설은 한글 기본 자모를 영문 글자 자리 안에 넣어서 얻은 것도 적는다. 그렇게 배열한 덕분에 숫자와 기호를 칠 때 모드를 바꾸지 않아도 되는 장치를 설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1982년의 내용은 1997년에 다시 확인해 펴낸 판(KS X 5002:1982)과 2007년판으로 읽었다. 두 판의 차이는 표기 수준이다. 1982년에 인쇄된 책자 자체는 확인하지 못했다.
전용 키 말고도 방법은 많았다
한글을 치다가 한자나 영문으로 넘어가는 방법은 기계마다, 프로그램마다 달랐다. 찾은 기록을 날짜순으로 놓으면 이렇다.
| 때 | 기록에 나오는 방법 |
|---|---|
| 1982년 11월 | 한국과학기술원 연구진이 한자 낱말 4만여 개를 디스켓에 담아, 한글로 음을 치고 한자 변환 키를 누르면 같은 음의 한자 가운데서 고르게 했다는 보도 |
| 1984년 | 대우의 MSX 컴퓨터 DPC-200에 '한글' 키가 있었다는 동호인 위키의 기록 |
| 1985년 8월 | 이어령이 신문 연재 글에서, 한글로 치고 키 하나를 누르면 한자로 바뀌는 워드프로세서로 글을 쓰고 있다고 적음 |
| 1989년 봄 | 애플 컴퓨터에서는 Ctrl-K로 한글, Ctrl-A로 영문을 시작하고, 워드프로세서 보석글에서는 Alt-F9와 Alt-F10으로 한글과 영문을 고른다는 설명 |
| 1989년 말 | 아래아한글의 도움말 파일에 한/영 전환은 Shift-Space, 한자는 F9로 적힘 |
아래아한글 도움말은 1.20판 프로그램과 함께 남아 있는 파일이다. 도움말 파일에 찍힌 날짜는 1989년 11월 27일이고, 함께 든 프로그램의 날짜는 1990년 1월 8일이다. Shift+Space와 F9가 적힌 문서로는 찾은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됐지만, 이 조합을 누가 먼저 썼는지를 말해 주지는 않는다.
행정전산망 키보드에 달린 두 키
전용 키 두 개가 함께 나오는 기록은 정부의 행정전산망 사업에서 시작된다. 정부는 1987년에 행정기관에 보급할 개인용 컴퓨터(당시 이름은 다기능사무기기)의 표준 규격을 정했다. 한국전산원이 1994년에 낸 지침서는 1987년에 전산망조정위원회가 보급 계획을 의결하고 행정전산망추진위원회가 표준 규격을 정했으며, 사용할 기관의 실무자와 제조 업체의 기술자가 기능을 협의했다고 돌아본다. 1988년 1월 9일 관보는 표준 사양의 기기가 1987년 12월부터 각급 행정기관에 보급되고 있다고 적는다.
1987년 규격의 본문은 찾지 못했다. 두 키가 처음 보이는 것은 그 이듬해다.
- 1988년 6월 22일, 매일경제의 제품 소식은 삼보컴퓨터의 새 한글 보드가 행정전산망용 키보드의 한/영 키와 한자 키로 한글/영문 모드를 바꾸고 한자를 고를 수 있게 했다고 전한다. 찾은 것 가운데 가장 이른 기록이다.
- 1988년 7월 11일, 같은 신문은 현대전자의 16비트 컴퓨터가 정부 표준 퍼스컴과 같은 한글 키보드를 채택했다고 전한다.
- 1989년 봄, 『국어생활』에 실린 김충회 인하대 교수의 글은 키보드의 대표적인 종류로 84키, 86키, 101키를 들고 이렇게 적는다. "86키는 행정 전산망 표준 키보드로 표준 84키에 한자 키와 한/영 전환 키 2개가 추가된 것이다."
- 1990년 12월, 총무처가 낸 『다기능사무기기활용편람』의 기본 사양 표에는 자판 항목이 'IBM PC/AT 자판기준 한글/영문Toggle Key 및 한자변환 Key추가(86키)'로 적혀 있다. 이 조항이 적힌 정부 문서로는 찾은 것 가운데 가장 이르다.
그 뒤의 변화는 관보에 실린 총무처의 표준 사양 안내로 따라갈 수 있다.
| 관보 | 키보드 조항 |
|---|---|
| 1992년 1월 24일 | XT급과 AT급 모두 86키, 선택 사양으로 103키 |
| 1992년 7월 29일 | XT는 86키, AT와 386은 103키. 키 배열과 성능은 KS C 5852를 따름 |
| 1993년 12월 4일 | XT급을 삭제, 남은 기종은 103키 |
| 1996년 1월 4일 | 103키 이상 |
1992년 7월의 안내에는 이런 문장도 있다. "한글·영문 및 한자의 전환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관계없이 정해진 전환키에 의하여 전환되어야 한다."
읽은 정부 문서 어디에도 두 키의 자리는 적혀 있지 않다. 누가 이 조항을 썼는지도 나오지 않는다.
KS 표준 속의 두 키
개인용 컴퓨터의 국가 표준은 그 뒤에 나왔다. 1989년 8월 초의 신문들은 공업진흥청이 개인용 컴퓨터의 KS를 처음 제정했다고 전한다. 국산 기종 20여 가지의 키보드가 서로 달라 쓰기에 혼란스럽고 한글 소프트웨어를 함께 쓸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고, 표준은 키보드의 자판 배열과 키 숫자, 문자 표시도 정했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이 표준이 국가 기간 전산망에 쓰는 컴퓨터의 기준을 주로 채택했다는 공업진흥청의 설명을 전한다. 1990년 8월 동아일보에는 생산되는 키보드는 대부분 101키인데 표준은 86키라는 대목이 있다. 다만 1989년 표준(KS C 5842, 지금의 KS X 5001)의 처음 본문은 찾지 못했다.
키보드만 다룬 표준은 1991년 6월 27일에 제정됐다. 번호는 KS C 5852, 지금의 KS X 5003이다. 그때의 매일경제는 이 표준이 키보드를 86키와 103키 두 종류로 나누고 종류마다 자판 배열과 스캔 코드를 통일했다고 전한다.
이 표준의 본문은 e-나라표준인증에서 1996년판과 2001년판을 볼 수 있다. 두 판의 그림에는 두 키의 자리가 그려져 있다.
| 종류 | 그림의 맨 아랫줄(왼쪽부터) |
|---|---|
| 86 키보드 | Alt, 한자, 스페이스바, 한/영, Caps Lock |
| 103 키보드 | Ctrl, Alt, 한자, 스페이스바, 한/영, Alt, Ctrl |
| 확장 키보드 | 103 키보드를 바탕으로 기능 키나 입출력 장치를 더할 수 있다 |
한자 키는 스페이스바 바로 왼쪽, 한/영 키는 바로 오른쪽이다. 86 키보드의 그림은 기능 키 열 개가 왼쪽에 두 줄로 놓인 AT 84키 방식의 배열에 두 키가 더해진 모양이다. 총무처 편람과 김충회가 적은 86키의 설명과 겹치지만, 표준 본문은 행정전산망을 말하지 않는다. 표준은 한글을 영문자보다 크게 표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도 적는다.
표준이 적지 않은 것도 있다. 본문은 두 키의 이름이나 하는 일을 글로 설명하지 않고, 그림과 코드 표에만 싣는다. 자리를 그렇게 정한 까닭도 없다. 101키와 106키는 종류에 없고 그림에 윈도우 키도 없다. 2001년판은 2021년에 다시 확인된 현행 표준이다.
1991년에 처음 나온 판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때의 그림도 같았는지, 1987년부터 1990년 사이의 정부 키보드에서 두 키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문서로 확인하지 못했다.
끝내 찾지 못한 것
누가, 왜 두 키를 스페이스바 양옆에 두었는지는 찾지 못했다. 1982년 표준이 권한 한/영 선택 키의 자리는 Shift와 같은 줄이었는데, 1996년판 키보드 표준의 그림에서는 스페이스바 옆에 있다. 그 사이에 자리를 정한 회의나 보고서, 설계한 사람의 말은 관보와 표준 본문, 1982년부터 1996년까지의 신문에서 나오지 않았다.
앞선 예는 있다. 일본어 위키백과는 1982년에 나온 NEC PC-9801에 한자 변환용 XFER 키가 새로 달렸다고 적고, 일본의 기술 매체 @IT는 1987년에 제안된 AX 규격이 101키 키보드의 오른쪽 Alt를 한자 키로 바꿨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한국의 두 키가 이를 따랐다고 적은 자료는 찾지 못했다.
여기서부터는 기록이 아니라 짐작이다. 스페이스바 양옆은 손을 글자 자리에서 떼지 않고 엄지로 누를 수 있는 자리여서, 글을 쓰는 동안 수시로 눌러야 하는 전환 키를 두기에 알맞다. 또 86 키보드 그림의 맨 아랫줄에서 두 키를 빼면 Alt, 스페이스바, Caps Lock만 남는다. 키가 몇 개 없던 줄이었던 셈이다. 다만 이 두 가지가 실제 까닭이었다고 적은 문서는 찾지 못했다.
한자 키를 왜 따로 두었는지도 문서에 없다. 확인되는 것은 그때 한자가 컴퓨터 규격에서 빠질 수 없는 요구였다는 사실이다. 1987년 8월 31일에 개정된 문자 코드 표준 KS C 5601을 만든 과정을 적은 글은 공청회에서 모인 요구 가운데 한자 사용이 필수라는 것이 있었고, 행정전산망 워크스테이션과 교육용 컴퓨터가 이 표준을 구매 조건으로 삼았다고 적는다. 마이크로소프트가 1993년에 낸 한글 바이오스 프로그램(HBIOS.COM)의 변환 표에는 한자가 꼭 4,888자 들어 있다.
정리
- 1982년에 제정된 자판 표준은 영문 글자와 한글 자모 26자의 자리만 옮길 수 없게 묶어 두었다. 전환 키는 둔다는 말과 Shift 줄의 권장 위치가 적혀 있고, 한자는 나오지 않는다.
- 두 키가 함께 나오는 가장 이른 기록은 1988년 6월의 신문 기사이고, 1990년 12월의 정부 편람은 행정전산망 키보드를 한글/영문 전환 키와 한자 변환 키를 더한 86키로 적는다.
- 1991년에 제정된 키보드 표준은 1996년판과 2001년판 그림에서 한자 키를 스페이스바 바로 왼쪽에, 한/영 키를 바로 오른쪽에 그린다.
- 누가, 왜 두 키를 스페이스바 양옆에 두었는지와 1987년 규격의 본문은 찾지 못했다.
참고한 자료
- KS X 5002 정보 처리용 건반 배열 — e-나라표준인증 — 1982년 6월 17일 제정과 그 뒤의 확인·개정 이력
- KS X 5002:1982(1997년 확인) 고시 원문 — e-나라표준인증 — 모드 지정 키, 한/영 선택의 권장 위치 B 12, 그림 2의 한/영 키
- KS X 5002:2007 본문 보기 — e-나라표준인증 — 바꿀 수 없는 26자, 기능 키를 정하지 않는다는 조항, 해설
- ISO/IEC JTC 1/SC 2 N 3280 — 한국 국가 기구 활동 보고 — 1997년 8월의 번호 체계 변경과 KS C 5715가 KS X 5002로 바뀐 예
- 매일경제 1982년 11월 1일 — 한글로 음을 치고 한자 변환 키를 누르는 방식의 연구 보도
- MSX Resource Center 위키: Daewoo DPC-200 — 1984년 기종과 한글 키
- 조선일보 1985년 8월 15일, 이어령 연재 — 키 하나로 한자로 바꾸는 워드프로세서
- 김충회, 「국어 자료 처리를 위한 개인용 컴퓨터의 시스템 설치에 대하여」, 『국어생활』 1989년 봄 — 84·86·101키 키보드, 행정전산망 표준 86키의 두 키, 보석글의 Alt-F9와 Alt-F10, 애플의 Ctrl-K와 Ctrl-A
- 아래아한글 1.20판과 함께 남은 도움말 파일 HWP.HLP(보관 사이트 사본) — 파일 날짜 1989년 11월 27일, 한/영 전환 Shift-Space, 한자 F9
- 한국전산원, 『다기능사무기기 적합시험 지침서』(1994년 12월) — 국가기록원 — 1987년의 보급 계획 의결과 표준 규격, 사용자·공급자 그룹의 협의
- 관보 제10829호(1988년 1월 9일) — 국가기록원 — 표준 사양 기기가 1987년 12월부터 보급되고 있다는 총무처 공고
- 매일경제 1988년 6월 22일 — 행정전산망용 키보드의 한/영 키와 한자 키
- 매일경제 1988년 7월 11일 — 정부 표준 퍼스컴과 같은 한글 키보드
- 총무처, 『다기능사무기기활용편람』(1990년 12월) — 국가기록원 — 기본 사양 표의 자판 조항(86키)
- 관보 제12027호(1992년 1월 24일) — 국가기록원 — 86키 필수, 103키 선택
- 관보 제12180호(1992년 7월 29일) — 국가기록원 — XT 86키, AT와 386은 103키, 전환키 문장, KS C 5852 준수
- 관보 제12584호(1993년 12월 4일) — 국가기록원 — XT급 삭제, 103키
- 관보 제13204호(1996년 1월 4일) — 국가기록원 — 103키 이상
- 경향신문 1989년 8월 4일 — 개인용 컴퓨터 KS를 만든 이유
- 조선일보 1989년 8월 4일 — 기간 전산망용 컴퓨터 기준을 주로 채택했다는 설명
- 매일경제 1989년 8월 4일 — 표준이 자판 배열, 키 숫자, 문자 표시를 정했다는 보도
- 동아일보 1990년 8월 22일 — 생산되는 키보드는 대부분 101키, 표준은 86키
- 매일경제 1991년 6월 25일 — 키보드 KS가 86키와 103키 두 종류를 정했다는 보도
- KS X 5003 개인용 컴퓨터 키보드 — e-나라표준인증 — 판마다의 고시 원문 보기
- KS X 5003 1996년판 고시 원문 — 옛 번호 KS C 5852, 세 종류, 그림의 두 키 자리, 코드 표
- KS X 5003:2001(2021년 확인) 고시 원문 — 1991년 6월 27일 제정, 현행 본문과 그림
- KS X 5003 — 한국표준협회 목록 — 1991년, 1996년, 2001년 판의 기록
- KS X 5001 개인용 컴퓨터 — 한국표준협회 목록 — 1989년 7월 31일 제정
- 전자신문 1995년 11월 30일 — 한글 윈도우 95가 28일 판매에 들어갔다는 보도
- 한글 윈도우 3.1 HBIOS.COM(1993년 5월, 보관 사이트 사본) — 자음별 기호 표와 한자 4,888자
- 일본어 위키백과: PC-9800シリーズ — 1982년 PC-9801에 새로 달린 XFER 키
- @IT, AX 키보드 설명(2000년 1월 26일) — 101키의 오른쪽 Alt를 한자 키로 바꾼 AX 규격
- 강석·조증성·박동순의 완성형 코드 제정 경위 글(국립국어원 누리집, 1990년) — 한자 사용이 필수라는 요구, 1987년 8월 31일 개정, 구매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