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는 한글 자판에는 이름이 있다. 두벌식이다. 그런데 이 이름은 다른 것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벌식이라 부르는 자판이 있고, 오래전부터 그것이 더 낫다고 말해 온 사람들이 있다.
거의 모든 컴퓨터와 휴대전화가 두벌식을 기본으로 내놓는 지금, 굳이 다른 자판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질 만하다. 두 자판이 한글을 어떻게 다르게 다루는지 보면 그 이유가 보인다.
한글은 자리마다 다른 일을 한다
한글의 한 글자는 자리에 따라 역할이 나뉜다. 앞에 오는 자음이 있고, 가운데 모음이 있고, 아래 받침이 있다. 각각을 초성과 중성과 종성이라 부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같은 자음이라도 앞에 올 때와 받침으로 올 때 하는 일이 다르다는 점이다. 기역이 앞에 오면 소리를 여는 자음이고, 아래에 오면 소리를 닫는 받침이다. 사람이 읽을 때는 자연스럽게 구별하지만, 자판을 만들 때는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지 정해야 한다.
두벌식이 택한 길
두벌식은 자음 한 벌과 모음 한 벌, 이렇게 두 벌만 둔다. 초성이든 종성이든 같은 자음은 같은 키를 쓴다. 기역은 어디에 오든 한 자리다.
덕분에 익힐 것이 적다. 자음 자리와 모음 자리만 외우면 되고, 왼손은 주로 자음을 오른손은 주로 모음을 맡아 좌우가 번갈아 움직인다. 배우기 쉽고 가르치기 쉬우니 표준으로 자리 잡을 만했다.
대신 컴퓨터가 할 일이 늘어난다. 자음이 눌렸을 때 그것이 앞 글자의 받침인지 다음 글자의 첫소리인지, 그 순간에는 알 수가 없다. 뒤에 무엇이 오는지 보고서야 판단할 수 있다.
도깨비불이라는 현상
이 판단 미루기가 눈에 보이는 순간이 있다. 각이라고 친 다음 아 소리를 내는 모음을 치면, 화면에 있던 각이 순식간에 가가로 바뀐다. 받침이던 기역이 다음 글자의 첫소리로 옮겨 간 것이다.
이것을 도깨비불 현상이라 부른다. 도깨비불처럼 글자가 이 자리에서 저 자리로 옮겨 다니는 모습에서 나온 이름이다. 잘못된 동작은 아니다. 두벌식이 뒤를 보고 판단하는 방식이라 반드시 따라오는 결과다.
빠르게 치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성가시다. 화면의 글자가 확정되지 않은 채 흔들리니, 눈으로 확인하며 치는 습관이 있으면 시선이 계속 방해받는다. 오타를 알아채는 시점도 한 박자 늦어진다.
세벌식이 택한 길
세벌식은 초성과 중성과 종성을 아예 다른 벌로 나눈다. 앞에 오는 기역과 받침으로 오는 기역이 서로 다른 키다. 키의 개수는 늘지만, 대신 어느 자리에 쓰이는 자음인지가 누르는 순간 확정된다.
확정되니 도깨비불이 없다. 친 대로 글자가 그 자리에 박히고 흔들리지 않는다. 손가락 부담이 한쪽으로 몰리지 않게 배치를 짤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두벌식에서는 자음이 왼손에 몰려 왼손이 훨씬 많이 일한다.
여러 손가락으로 한 글자의 초성과 중성과 종성을 거의 동시에 눌러 한 번에 완성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모아치기라 부르는 것인데, 익숙해지면 속도가 크게 오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왜 널리 쓰이지 않는가
첫째 이유는 배우는 비용이다. 외울 자리가 두벌식보다 훨씬 많고, 이미 두벌식이 손에 익은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다시 익혀야 한다. 그 기간 동안 속도가 크게 떨어지는 것을 견뎌야 한다.
둘째는 환경이다. 컴퓨터에서는 설정을 바꾸면 되지만, 남의 컴퓨터나 처음 보는 기기 앞에서는 다시 두벌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휴대전화, 공용 컴퓨터, 회사 자리처럼 내 설정이 아닌 곳이 생각보다 많다. 키캡에 세벌식 자리가 새겨진 키보드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세벌식은 오래 쓸 사람, 하루에 아주 많은 글을 치는 사람, 도깨비불이 유난히 거슬리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선택으로 남았다. 대부분에게는 두벌식이 충분히 좋은 자판이고, 그 자판으로도 속도는 얼마든지 올라간다.
두 자판을 놓고 어느 쪽이 우월하냐를 다투는 일은 오래되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다. 지금 쓰는 자판이 유일한 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손끝에서 벌어지는 일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