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연습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궁금해진다. 한글 타자 평균은 몇 타일까. 검색창에 넣어 보면 답이 우수수 쏟아진다. 그런데 그 답들이 서로 다르다. 이백 타가 평균이라는 글 옆에 사백 타는 되어야 한다는 글이 나란히 있다. 읽고 나면 오히려 더 헷갈린다.
사실 이 질문의 속마음은 평균 자체가 아니다. 내가 지금 어디쯤인지, 이대로 괜찮은지가 궁금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글은 숫자를 하나 짚어 주는 대신, 그 숫자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부터 이야기하려고 한다.
믿을 만한 평균은 없다
한글 타자 속도의 공식 평균 같은 것은 없다.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글로, 얼마 동안 쟀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짧은 낱말을 치는 속도와 긴 글을 치는 속도는 다르고, 아는 문장과 처음 보는 문장도 다르다. 조건이 다른 측정을 한데 섞어 평균이라 부르면, 그 숫자는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게다가 타자 속도는 직업과 세대에 따라 편차가 크다. 하루 종일 자판 앞에 앉아 일하는 사람과 휴대폰 자판이 더 익숙한 사람의 손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사람이라도 아침의 손과 밤의 손이 다르다. 그러니 어디선가 본 평균보다 낮다고 주눅 들 이유도, 높다고 안심할 이유도 없다.
그래도 감은 잡을 수 있다
다만 오래 쌓인 통념의 범위는 있다. 흔히 이백 타 정도면 일상에서 쓰기에 부족하지 않고, 삼백 타대면 사무 업무가 수월하며, 오백 타를 넘기면 빠르다는 말을 듣는 편이라고들 한다. 학교에서 타자 수업을 받던 시절에도 목표는 이백에서 삼백 타 언저리였던 것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고, 문서 실무를 다루는 자격 시험의 속도 기준도 그 부근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이 범위는 등수가 아니라 지도의 눈금으로 읽으면 된다. 지금 이백 타라면 기본기가 자리 잡는 구간이고, 삼백 타라면 생활에는 이미 넉넉한 편이다. 그 위부터는 필요의 영역이라기보다 즐거움의 영역에 가깝다. 빨라서 나쁠 것은 없지만, 급할 것도 없는 속도다.
같은 조건으로 재야 의미가 있다
속도를 잴 때 정말 중요한 것은 조건을 고정하는 일이다. 오늘은 짧은 낱말로 재고 내일은 긴 글로 재면, 두 숫자는 비교할 수 없다. 같은 종류의 글, 비슷한 길이, 비슷한 시간대. 이렇게 조건을 맞춰 두고 재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나란히 놓을 수 있다. 한 번의 기록에 일희일비할 필요도 없다. 속도는 그날의 몸 상태를 따라 출렁이는 법이라, 여러 번 잰 기록의 흐름을 보아야 정확하다.
비교 상대도 바꾸어야 한다. 얼굴도 모르는 평균과 겨루는 일은 이기든 지든 남는 것이 없다. 같은 조건으로 잰 두 기록 사이의 차이, 오직 그것만이 무언가를 말해 준다. 기록은 남과 견주는 잣대가 아니라 나를 비추는 거울일 때 힘이 있다.
급수라는 눈금
그래서 급수라는 개념이 쓸모 있다. 무술 도장에서 흰 띠부터 검은 띠까지 단계를 나누듯, 타자 실력도 몇 개의 급으로 나누어 놓으면 지금 위치와 다음 목표가 한눈에 들어온다. 평균이라는 흐릿한 안개 대신, 다음 급이라는 또렷한 계단이 생기는 셈이다. 다음 급까지 몇 타가 남았는지 눈에 보이면 연습은 막연한 숙제가 아니라 구체적인 놀이가 된다.
급수의 미덕은 재는 조건이 정해져 있다는 데 있다. 누구나 같은 방식으로 재니 기록끼리 비교할 수 있고, 승급이라는 작은 매듭이 연습에 재미를 붙여 준다. 낮은 급에서 시작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다. 흰 띠는 모든 검은 띠의 과거라는 말이 있다. 띠 색이 바뀌는 날의 설렘을 타자 연습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궁금하다면 오늘 한번 재 보면 좋겠다. 같은 조건으로, 편한 마음으로. 평균이 몇 타인지보다 중요한 것은,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몇 타 빠른가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