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를 고를 때 사람들은 소리와 키압을 오래 고민한다. 그런데 정작 매일 몸에 닿는 문제는 따로 있다. 키보드가 책상에서 차지하는 폭이다. 크기는 취향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자세와 생활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배열을 이해하는 요령은 키 개수를 세지 않는 것이다. 대신 구역을 본다. 키보드에는 크게 세 구역이 있다. 글자를 치는 가운데 구역, 방향키와 편집키가 모인 오른쪽 구역, 그리고 맨 오른쪽의 숫자판. 배열을 고른다는 것은 이 구역들 가운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접을지 정하는 일이다. 구역이 하나 접힐 때마다 책상은 넓어지고, 대신 손이 새로 외워야 할 것이 하나씩 늘어난다.
풀배열, 숫자판이 일하는 자리
풀배열은 세 구역을 모두 갖춘 형태다. 핵심은 숫자판이다. 글자 구역 윗줄에도 숫자키가 있지만, 숫자판은 손을 옮기지 않고 한 손으로 연달아 숫자를 넣도록 만들어진 구역이다. 하루 종일 장부에 금액을 옮겨 적는 사람, 표 계산 프로그램에 수치를 쏟아붓는 사람에게 숫자판은 사치가 아니라 연장이다. 익숙한 손은 숫자판 위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듯 움직인다.
학교 전산실에서, 사무실 책상에서 우리가 처음 만진 키보드가 대개 이 모습이었으니, 눈에 익어 마음이 놓인다는 사람도 많다.
대신 값을 치른다. 폭이 넓어서 오른손이 마우스까지 가는 길이 멀다. 숫자를 어쩌다 한 번 치는 사람이라면, 쓰지 않는 구역이 책상 한 뼘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텐키리스, 마우스가 가까워지는 폭
텐키리스는 이름 그대로 숫자판만 떼어 낸 배열이다. 글자 구역과 방향키 구역은 그대로라서, 몸에 익은 손버릇을 하나도 바꾸지 않아도 된다.
얻는 것은 오른쪽의 빈 공간이다. 마우스가 몸 가까이 들어오면 오른팔을 벌리는 각도가 줄고, 어깨의 부담도 함께 줄어든다고들 한다. 손목 이야기에서 다뤘던 마우스 거리 문제를 배열 차원에서 푸는 셈이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텐키리스를 찾는 이유도 비슷하다. 마우스를 크게 휘두를 자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숫자 입력이 잦지 않은 사람에게는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큰 편이다. 첫 기계식 키보드를 고르는 자리에서 텐키리스가 자주 이름을 올리는 것도, 잃는 것과 얻는 것이 둘 다 뚜렷해서 셈이 쉽기 때문일 것이다.
미니배열, 조합키를 배우는 값
미니배열은 방향키 구역까지 접는다. 흔히 육십 퍼센트 배열이라고 부르는 크기가 대표적이다. 방향키를 비롯한 오른쪽 구역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조합키 아래로 숨는다. 정해진 키를 누른 채 다른 키를 누르면 그 키가 방향키 노릇을 하는 식이다. 말하자면 서랍이다. 겉에서 보이지 않을 뿐, 열면 다 들어 있다.
처음 며칠은 분명 불편하다. 방향키를 누르려던 손가락이 허공을 짚는다. 그런데 이 고비를 넘기면 다른 세계가 열린다는 사람이 많다. 손이 홈 포지션을 거의 떠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가방에 쏙 들어가는 크기라 자리를 자주 옮기는 사람에게 잘 맞고, 책상을 비워 두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 단정한 생김새 자체가 매력이다. 다만 배우는 값을 치를 마음이 있어야 한다.
고르기 전에, 하루를 관찰한다
어느 배열이 표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람마다 하루가 다르기 때문이다. 고르기 전에 자기 하루를 며칠만 지켜보면 답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숫자를 하루에 얼마나 치는지, 마우스에 손이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 키보드를 들고 나가는 날이 있는지. 그 관찰이 어떤 후기보다 정확한 안내가 된다. 회사에서는 풀배열, 집에서는 미니배열처럼 자리마다 다르게 두는 사람도 있으니, 하나만 골라야 한다는 법도 없다. 배열은 유행으로 고르는 물건이 아니라 생활에 맞추는 물건이다.
책상에 맞는 크기란 결국 내 하루에 맞는 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