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어깨에 낡은 녹음기 하나를 메고 다녔다. 가방에는 여분의 건전지와 손바닥만 한 수첩이 들어 있었다. 수첩에는 장소도 날짜도 아닌, 소리의 이름만 적혀 있었다. 다듬이 소리, 풀무 소리, 두부 종소리. 동네 사람들은 그를 소리를 줍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왜 소리를 모으느냐고 물으면 그는 대답 대신 웃었다. 다만 아내를 먼저 보내고 나서, 얼굴보다 목소리가 먼저 흐려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언젠가 딱 한 번 말한 적이 있다. 사진은 남는데 소리는 남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사라지기 전의 소리들을 주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다듬이 소리를 주운 날을 그는 오래 기억했다. 산 아래 마을, 마루가 깊은 집이었다. 노파 둘이 마주 앉아 방망이를 놀리자 또닥또닥, 또드락또드락, 소리가 마당을 건너 담을 넘었다. 두 사람의 방망이는 한 번도 부딪치지 않고 서로의 사이로 정확히 내려앉았다. 그는 숨을 죽이고 녹음기를 내밀었다. 바람 소리가 끼어들면 처음부터 다시 부탁해야 했지만, 노파들은 싫은 내색이 없었다. 옛날에는 이 소리가 온 동네에 가득했다고, 한 노파가 방망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대장간에서는 불이 후욱후욱 숨을 쉬었다. 달군 쇠 위로 망치가 떨어질 때마다 땅, 땅, 하는 소리가 벽을 때리고 되돌아왔다. 벌겋게 달아오른 낫이 물통에 잠기며 치이익 길게 울면, 대장장이는 그제야 허리를 폈다. 골목에서는 두부 장수의 종이 딸랑딸랑 흔들렸고, 담 너머 우물에서는 두레박이 삐거덕, 삐거더덕, 두레줄을 타고 오르내렸다. 그는 소리마다 짧은 메모를 달았다. 이 소리의 주인은 올해를 끝으로 일을 놓으신다고 한다. 이 가게는 다음 달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늘 제때 닿는 것은 아니었다. 물레방아 소리를 들으러 산길을 넘어갔더니 방아는 이미 헐리고 개울물만 졸졸 흐르던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그는 빈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귀를 기울이다가,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테이프에도 이름을 붙여 두었다. 늦게 도착한 소리들. 선반 한 칸은 그렇게 조용한 테이프들로 채워졌다. 밤이면 그는 그날 주운 소리를 다시 들으며 수첩을 정리했다. 테이프가 사르륵 되감기는 소리마저, 그에게는 하루를 접는 소리였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젊은 기자가 물었다. 모은 소리 가운데 가장 아끼는 것이 무엇이냐고. 기자는 대장간이나 다듬이 같은 답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노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선반 맨 안쪽에서 테이프 하나를 꺼내 걸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것은 뜻밖에도 타닥타닥, 타다닥, 누군가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밤 골목을 지나다 불 켜진 창문 아래에서 주운 소리라고 했다. 두드림은 빨라졌다가 느려졌다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무언가를 지우고 고쳐 쓰는 기척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기자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자 노인은 천천히 말했다. 여기 있는 소리들은 전부 지는 소리라고. 다듬이도, 풀무도, 종소리도, 이제 세상에서 한 걸음씩 물러나는 중이라고. 그런데 이 소리만은 다르다고 했다. 무언가를 쓰는 소리는 사라지는 법이 없다. 붓이 사각거리던 것이 타자기의 찰칵거림이 되고, 그것이 다시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되었을 뿐, 쓰는 소리는 늘 어딘가에서 새로 태어나고 있다. 지는 소리들 사이에서 이것 하나만은 아침 쪽을 보고 있는 셈이라고, 노인은 말했다.
기자가 돌아간 뒤에도 노인은 그 테이프를 한 번 더 돌렸다. 타닥, 타다닥. 그 소리 너머에서 누군가는 편지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일기였을지도, 부치지 못할 안부였을지도 모른다. 무엇이었든 상관없었다. 창밖이 어두워지도록 노인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사라져 가는 소리들로 가득한 방 안에서, 태어나는 소리 하나가 오래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