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를 오래 만지다 보면 어느 날 소리가 궁금해진다. 스위치를 바꾸고, 폼을 넣고, 윤활을 하고 나면 대개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소리가 정말 달라졌을까. 귀로는 분명 달라진 것 같은데, 어제의 소리는 이미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은 흐릿하고, 소리는 붙잡을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녹음을 시작한다. 튜닝 전과 후를 비교해 보려던 것이 어느새 취미가 되기도 한다. 거창한 장비 이야기가 아니다. 스마트폰 하나면 오늘 밤에라도 시작할 수 있다.
왜 소리를 남기나
소리는 기억으로 보관하기 가장 어려운 감각이라고들 한다. 사진은 남고 글도 남는데, 타건음은 손을 떼는 순간 사라진다. 녹음은 이 사라지는 소리에 날짜를 붙여 주는 일이다. 튜닝 전후를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 있고, 계절이 지나며 취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확인할 수 있고,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에게 내 키보드의 소리를 그대로 들려줄 수도 있다. 말로는 통통거린다, 차분하다 정도로밖에 설명하지 못하던 것을 녹음 하나면 있는 그대로 전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서 마이크 하나로
시작은 스마트폰이면 충분하다. 요즘 스마트폰에 달린 마이크는 생각보다 성능이 좋은 편이라, 조용한 방에서 키보드 가까이 두고 녹음하면 꽤 들을 만한 소리가 나온다. 녹음 기능을 켜고, 평소 치던 문장을 치고, 이어폰으로 다시 들어 보는 것. 이것으로 이미 시작이다. 부족한 것은 장비가 아니라 요령인 경우가 많다.
조금 더 나아가고 싶어지면 그때 마이크 하나를 들이면 된다. 꼭 값비싼 전문 장비일 필요는 없다. 말소리를 담으려고 나온 마이크로도 얼마든지 시작할 수 있다. 고르는 기준을 하나만 꼽자면, 작은 소리를 가까이에서 또렷하게 담아 주는 종류가 유리한 편이다. 타건음은 크지 않은 소리라, 멀리서 넓게 담는 마이크보다 가까이서 세밀하게 담는 마이크가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 마이크는 귀보다 정직해서, 좋은 마이크일수록 키보드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 준다.
녹음의 요령 몇 가지
마이크는 키보드에 가깝게 둔다. 한 뼘 안팎이면 좋다고들 한다. 멀어질수록 방의 울림이 섞여 들어와 소리가 흐려진다. 다음은 시간대다. 녹음은 집이 조용한 시간에 하는 것이 좋다. 낮에는 들리지 않던 냉장고 소리, 에어컨 바람 소리가 녹음에는 또렷하게 남는다. 잠시 꺼 둘 수 있는 것은 꺼 두고, 창문을 닫고, 방이 가장 조용해지는 때를 고른다. 녹음하는 동안에는 의자를 끌거나 책상 위 물건을 옮기지 않는 것도 요령이다. 그런 소리까지 전부 함께 담기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비교가 목적이라면 같은 문장을 친다. 문장이 다르면 누르는 글쇠가 달라지고, 글쇠가 다르면 소리도 달라진다. 늘 같은 문장을 비슷한 빠르기로 쳐 두면, 석 달 전의 녹음과 오늘의 녹음을 나란히 놓고 들을 수 있다. 소리의 일기장에 같은 문장으로 도장을 찍어 두는 셈이다.
내 귀가 몰랐던 소리
처음 녹음을 들으면 낯설어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알던 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치는 사람의 귀에는 손끝의 느낌과 책상을 타고 올라오는 진동이 함께 섞여 들리지만, 마이크는 공기를 건너온 소리만 담는다. 남이 듣는 내 키보드 소리는 이쪽에 가깝다. 제 목소리를 녹음해 듣고 놀라는 것과 비슷한 일이 키보드에서도 벌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이 낯섦이 이 취미의 가장 큰 재미다. 녹음을 들으며 비로소 알게 된다. 스페이스바만 유난히 큰 소리를 낸다든가, 오른손 쪽 글쇠와 왼손 쪽 글쇠의 결이 다르다든가. 귀로만 듣던 때에는 몰랐던 내 키보드의 표정들이다. 요즘은 웹에서 연습 화면과 타건 소리를 함께 녹화해 남기는 방법도 있으니, 화면과 소리를 같이 보관하는 것도 좋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것은 남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키보드는 치는 물건이면서 듣는 물건이기도 하다. 소리를 기록하는 순간, 취미는 두 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