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안쪽에 자리한 작은 도서관이다. 낮에는 여느 도서관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밤 열두 시가 지나면 이곳은 다른 숨을 쉰다. 낮 동안 엉뚱한 자리에 꽂힌 책들이 하나둘 몸을 뒤척이고, 서가에서 스르르 빠져나와 통로를 건넌다. 두꺼운 책은 뒤뚱거리며 걷고, 얇은 시집은 표지를 파닥여 낮게 난다. 저마다 제자리를 찾아 들어가면 서가가 나직하게 삐걱, 하고 대답한다. 그 소리를 아는 사람은 야간 사서 한 명뿐이다.
그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낮의 소란보다 밤의 고요가 몸에 맞아 이 일을 맡았다고들 했다. 이 광경을 처음 본 밤에도 그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그저 오래 서서 바라보았다. 길 잃은 것이 길을 찾아가는 일은 놀랄 일이 아니라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그는 밤마다 책상 앞에 앉아 그 조용한 행렬을 지켜보았다. 불은 켜지 않았다. 달빛이면 충분했다.
책들은 저마다 걸음이 달랐다. 갓 들어온 책은 겅중겅중 서둘렀고, 오래된 사전은 무겁게 바닥을 끌며 갔다. 그림책들은 한데 몰려다니느라 좀처럼 줄을 서지 않았다. 사서는 그 모든 걸음을 눈으로 배웅했다. 그의 일은 돕는 것이 아니라 지켜보는 것이었다. 책들이 스스로 길을 아는 한, 사람의 손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권, 끝내 자리를 찾지 못하는 책이 있었다. 낡은 동화책이었다. 표지는 바랬고 책등의 이름표는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그 책은 밤마다 이 서가 저 서가를 기웃거리다, 빈틈에 몸을 밀어 넣어 보다, 이웃한 책들이 어깨를 좁히면 슬그머니 밀려 나왔다. 발소리부터 달랐다. 다른 책들이 제집을 걷는 소리라면, 그 책의 발소리는 남의 집 마루를 걷는 사람처럼 조심스러웠다. 새벽이 오면 반납대 구석으로 돌아가 가만히 엎드렸다. 전임 사서에게 들은 적이 있다. 수십 년 전 반납함에서 나왔는데, 장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은 책이라고. 그때부터 쌓였을 먼지가 표지 위에 얇은 재처럼 앉아 있었다.
어느 밤 사서는 그 책을 집어 들었다. 첫 장을 넘기자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글씨가 있었다. 우리 언니 책. 소중히 볼 것. 도서관 도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제야 사서는 알았다. 이 책은 애초에 도서관의 책이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 어떤 아이가 언니의 책을 빌린 책들 틈에 섞어 반납함에 넣어 버렸고, 그날부터 책은 있지도 않은 제자리를 찾아 헤맨 것이다. 불릴 이름이 없는 책을, 어느 서가도 받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사서는 잠시 그 글씨의 주인을 생각했다. 꾹꾹 눌러 쓴 아이는 이제 사서보다 나이가 많을 것이었다. 언니는 책이 없어진 걸 알았을까. 동생은 끝내 말하지 못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헤매는 것에게 자리를 내주는 일은, 지금 여기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사서는 그 밤 내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등록 장부를 펴고, 장부 맨 끝 줄에 그 책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 넣었다. 도장을 찍고, 새 이름표를 정성껏 써서 책등에 붙였다. 풀이 마르는 동안 그는 책을 무릎에 얹은 채 창밖이 밝아 오는 것을 보았다. 이 도서관이 밤에 받아들인 첫 책이었다.
다음 날 밤 열두 시. 책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낡은 동화책은 반납대 위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동화 서가의 낮은 칸을 향해 또박또박 걸어갔다. 이웃한 책들이 어깨를 벌려 자리를 내주었다. 책이 몸을 밀어 넣자 서가가 나직하게 삐걱, 하고 대답했다. 수십 년 만에 듣는 대답이었다.
사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서가 앞을 천천히 지났다. 책등의 새 이름표가 달빛에 희게 빛났다. 그는 손끝으로 표지의 먼지를 한 번 쓸어 주고 돌아섰다. 도서관은 다시 고요해졌다. 모든 책이 제자리에 있는 고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