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를 옆에서 비스듬히 들여다보면 키 사이의 골짜기가 보인다. 거기에는 대개 먼지와 부스러기와 머리카락이 쌓여 있다. 매일 손이 닿는 물건인데도 좀처럼 씻을 생각을 하지 않는 물건이기도 하다.
청소는 위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먼지가 스위치 안까지 들어가면 눌리는 느낌이 거칠어지고, 심하면 접점이 나빠져 글자가 씹히기 시작한다. 손질을 해 두면 소리도 달라진다. 몇 해 쓴 키보드가 새것 같아지는 일은 실제로 일어난다.
가벼운 청소부터
매일 하기에 알맞은 것은 뒤집어 터는 일이다. 키보드를 거꾸로 들고 바닥을 몇 번 두드리면 사이에 낀 부스러기가 상당히 떨어진다. 이것만 이따금 해 주어도 골짜기가 채워지는 속도가 크게 준다.
바람을 부는 것도 방법이다. 압축 공기를 쓰거나 작은 송풍기로 골짜기를 훑는다. 다만 바람은 먼지를 밖으로 내보내기도 하지만 더 깊은 곳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키보드를 세워 놓고 아래로 밀어내듯 부는 편이 낫다.
키캡 표면의 손때는 마른 헝겊으로는 잘 지워지지 않는다. 물을 살짝 묻힌 헝겊을 꽉 짜서 닦고 마른 쪽으로 다시 훑으면 대부분 지워진다. 알코올을 쓸 때는 조심해야 한다. 인쇄 방식으로 각인한 키캡은 알코올에 글자가 지워지기도 한다.
키캡을 뽑을 때
제대로 청소하려면 키캡을 뽑아야 한다. 반드시 뽑개를 쓴다. 철사로 된 뽑개는 키캡 아래를 걸어 곧게 들어 올리는 도구라, 손톱이나 젓가락으로 비틀 때처럼 키캡이 깨지거나 스위치가 함께 딸려 올라오는 일이 적다.
뽑기 전에 사진을 한 장 찍어 두면 좋다. 키캡은 줄마다 높이가 다르게 만들어져 있어서, 자리를 헷갈려 꽂으면 그 자리만 손끝에 걸린다. 특히 오랜만에 쓰는 기능 키들은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이 흐릿해지기 쉽다.
큰 키는 조금 다르다. 스페이스바나 엔터 아래에는 안정기가 달려 있어서, 뽑을 때 철사가 함께 빠지거나 다리가 어긋날 수 있다. 천천히 곧게 들어 올리고, 다시 꽂을 때는 다리와 철사가 제자리에 걸리는지 확인하며 눌러야 한다.
키캡 씻기
뽑은 키캡은 미지근한 물에 중성세제를 조금 풀어 담가 둔다. 한나절쯤 두었다가 손으로 문지르면 골 사이의 때가 쉽게 빠진다. 칫솔로 살살 문질러도 좋다.
뜨거운 물은 피해야 한다. 플라스틱이 변형되거나 각인이 상할 수 있다. 말릴 때는 헝겊 위에 엎어 놓고 완전히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 안쪽 홈에 물이 남은 채로 꽂으면 스위치 쪽으로 물이 흘러든다. 하룻밤은 두는 편이 안전하다.
민감한 각인이 있는 키캡은 담그기 전에 눈에 잘 띄지 않는 하나로 먼저 시험해 보는 것이 좋다.
본체 쪽 손질
키캡을 뽑아낸 자리는 스위치들이 솟아 있는 벌판이다. 여기는 물을 쓰면 안 된다. 붓이나 마른 솔로 먼지를 쓸어내고, 바람으로 날린다. 굳어붙은 자국은 알코올을 살짝 묻힌 면봉으로 닦되, 스위치 틈으로 흘러들지 않게 면봉을 꽉 짜서 쓴다.
음료를 쏟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곧바로 선을 뽑고 전원을 끊은 다음, 뒤집어 흘러나오게 두어야 한다. 설탕이 든 음료는 마르면서 끈적하게 굳어 스위치를 못 쓰게 만든다. 이때는 분해해서 닦아 내는 수밖에 없고, 핫스왑 키보드라면 해당 스위치만 갈아 끼우는 것으로 끝나기도 한다.
반질거리는 키캡을 되살릴 수 있을까
오래 쓴 키보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자주 누르는 키가 반들반들해지는 것이다. 때가 낀 것 같아 닦아 보지만 광은 지워지지 않는다. 표면의 오돌토돌한 결이 손끝에 눌려 평평해진 것이라, 씻는다고 돌아오지 않는다.
되살리려는 시도가 없지는 않다. 고운 사포나 지우개로 표면을 아주 살짝 문질러 결을 다시 내는 방법이 알려져 있다. 다만 손이 잘못 가면 각인이 상하거나 그 자리만 색이 달라지니, 아끼는 키캡에 곧바로 시도할 일은 아니다.
애초에 덜 반질거리게 하는 편이 낫다. 표면이 까슬한 재질의 키캡은 광이 늦게 오르고, 손을 씻고 만지는 습관이 그 속도를 더 늦춘다. 그럼에도 결국은 광이 오른다. 그때는 키캡만 새로 사서 갈아 끼우면 된다. 키보드를 통째로 바꾸는 것보다 훨씬 적은 값으로 새것 같은 자판을 얻는다.
얼마나 자주 하나
무겁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뒤집어 터는 일은 생각날 때마다, 표면을 닦는 일은 한 달에 한 번쯤이면 충분하다. 키캡을 전부 뽑아 씻는 큰 청소는 여섯 달에서 한 해에 한 번이면 넉넉하다.
한 가지 덧붙이면, 손을 씻고 키보드를 만지는 습관이 어떤 청소보다 낫다. 키캡이 반질반질해지는 것은 대부분 손끝의 기름이 쌓여 표면을 문지른 결과다. 먹으면서 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청소는 쌓인 것을 걷어내는 일이고, 쌓이지 않게 하는 편이 언제나 더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