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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

키캡 재질의 비밀 — 반질거리는 키캡과 까끌한 키캡

타닥 읽을거리 · 2026-07-28

오래 쓴 키보드를 들여다보면 자주 누르는 키부터 반질반질 광이 난다. 기름때가 낀 것 같아 닦아 보지만 광은 지워지지 않는다. 때가 아니라 키캡 표면 자체가 변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몇 년을 써도 처음의 까끌까끌한 감촉이 그대로인 키캡도 있다. 두 키캡의 차이는 관리가 아니라 재질에서 갈린다.

키캡은 대부분 플라스틱이다. 그런데 같은 플라스틱이라도 성질이 꽤 다르다. 무르고 시간이 지나면 매끈해지는 재질이 있고, 단단하고 까끌함이 오래가는 재질이 있다. 이 차이를 알고 나면 키보드를 고를 때 보이는 것이 하나 늘어난다.

반질거림의 정체

새 키캡의 표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고운 잔결이 있다. 손끝이 수만 번 스치는 동안 무른 재질은 이 잔결이 닳아 평평해진다. 표면이 매끈해지면 빛이 고르게 반사되고, 그것이 우리가 보는 광이다. 구두를 문질러 광을 내는 것과 같은 원리인 셈이다.

흔히 에이비에스라 부르는 무른 재질이 이런 길을 걷는다. 발색이 곱고 다루기 쉬워 널리 쓰이지만, 손을 오래 타면 반질거리기 시작한다. 반면 흔히 피비티라 부르는 단단한 재질은 잔결이 잘 버텨서, 몇 년을 써도 까끌한 감촉과 차분한 표면이 남는다. 손끝에 닿는 첫 느낌도 다르다. 무른 쪽은 새것도 매끄럽고, 단단한 쪽은 새것부터 종이처럼 서걱거린다.

어느 쪽이 좋다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매끈하게 길든 감촉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서걱거리는 첫 감촉을 아끼는 사람도 있다. 다만 새것 같은 겉모습이 오래가길 바란다면 단단한 쪽이 유리하다.

글자는 어떻게 새기나

글자를 새기는 방식도 수명이 다르다. 가장 값싼 방법은 표면에 잉크로 인쇄하는 것이다. 인쇄된 글자는 손끝에 갈려 언젠가 흐려진다. 자주 쓰는 자리부터 글자가 지워진 키보드를 본 적이 있다면 대개 이 방식이다.

한 단계 위는 물들이는 방식이다. 열로 염료를 재질 속까지 스며들게 해서, 글자가 표면이 아니라 살 속에 있다. 표면이 닳아도 글자는 남는다. 다만 밝은 바탕에 어두운 글자를 넣는 쪽이 수월해서, 색 조합에 제약이 있다.

또 하나는 두 겹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글자 모양의 플라스틱을 먼저 만들고 그 위에 다른 색을 덧씌운다. 글자가 아예 별개의 몸이라, 키캡이 다 닳도록 살아남는다. 그래서 키캡을 고를 때는 재질과 함께 글자를 어떻게 새겼는지도 한 번 살펴볼 만하다. 몇 년 뒤 자판의 모습이 거기서 어느 정도 갈린다.

두께가 소리를 바꾼다

같은 키보드라도 키캡만 바꾸면 소리가 달라진다. 얇은 키캡은 가볍고 높은 소리를 내고, 두꺼운 키캡은 낮고 단단한 소리를 낸다. 얇은 벽은 쉽게 울리고 두꺼운 벽은 울림을 삼키기 때문이다. 얇은 유리컵을 두드릴 때와 두툼한 머그잔을 두드릴 때의 차이를 떠올리면 비슷하다. 요즘 낮게 도각거리는 소리를 찾는 사람들이 두꺼운 키캡을 챙겨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로파일, 높낮이의 흐름

키캡을 옆에서 보면 줄마다 높이와 기울기가 조금씩 다르다. 이 높낮이의 흐름을 프로파일이라 부른다. 계단처럼 층이 지고 윗면이 오목하게 파인 것이 있는가 하면, 노트북 자판처럼 전체가 낮고 평평한 것도 있다. 오목한 정도와 전체 높이가 조금씩 달라, 같은 키보드도 프로파일에 따라 전혀 다른 물건처럼 느껴진다. 층이 진 쪽은 손가락이 제자리를 찾기 쉽고, 납작한 쪽은 손이 미끄러지듯 움직인다고들 한다. 정답은 없다. 손 크기가 다르고 자판을 두드리는 버릇이 다르니, 한 사람에게 편안한 흐름이 다른 사람에게는 영 어색하기도 하다.

스위치는 윤활을 따지고 보강판은 재질을 따지지만, 하루 종일 손끝이 직접 닿는 부품은 결국 키캡 하나뿐이다. 그러니 키캡만큼은 취향에 아낌없이 투자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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