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 설명을 읽다 보면 그램이라는 단위가 따라붙는다. 사십오 그램, 오십 그램, 육십칠 그램. 무게를 재는 단위인데 왜 키보드에 붙어 있는지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다. 이것이 키압이다. 키 하나를 눌러 글자가 들어가게 하는 데 필요한 힘을 무게로 바꿔 적은 값이다.
사십오 그램이라면 오백 원짜리 동전 몇 개를 키 위에 얹었을 때 저절로 눌리는 정도라고 생각하면 얼추 맞다. 숫자만 보면 도토리 키재기 같지만, 하루에 수천 번을 누르는 손가락에게는 그 작은 차이가 쌓인다.
두 개의 숫자가 있다
키압에는 사실 서로 다른 값이 섞여 쓰인다. 하나는 글자가 입력되는 지점까지 누르는 데 드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키를 끝까지 밀어 바닥에 닿게 하는 데 드는 힘이다. 앞의 것을 작동 압력, 뒤의 것을 바닥 압력이라 부른다.
스위치 안의 스프링은 누를수록 더 세게 밀어 올린다. 그래서 두 값은 늘 다르다. 작동 압력이 사십오 그램인 스위치도 바닥까지 누르면 육십 그램 가까이 힘이 든다. 제품 설명에 적힌 값은 대개 작동 압력이라, 실제로 손끝이 느끼는 무게는 그보다 무겁다. 두 스위치를 비교할 때는 어느 쪽 값인지 확인하는 편이 좋다.
가벼운 쪽과 무거운 쪽
가벼운 스위치는 손가락이 힘을 덜 들인다. 오래 쳐도 손이 덜 지치고, 같은 키를 빠르게 이어 칠 때 유리하다. 대신 손을 자판 위에 얹어 두는 습관이 있으면 누를 마음이 없었는데도 글자가 들어가는 일이 생긴다. 새끼손가락처럼 힘이 약한 손가락이 담당하는 자리에서는 이 가벼움이 반가운데, 검지처럼 힘이 센 손가락 자리에서는 오히려 헛디딤이 늘기도 한다.
무거운 스위치는 반대다. 손끝에 또렷한 저항이 있어서 누르고 있다는 감각이 분명하다. 실수로 스치는 일이 적고,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넣는 맛이 있다. 다만 오래 치면 손가락과 손목에 피로가 쌓인다. 하루에 만 자를 치는 사람과 채팅 몇 줄을 치는 사람에게 같은 무게가 맞을 리 없다.
어느 쪽이 낫다는 답은 없다. 다만 처음 고를 때는 중간쯤에서 시작하는 편이 안전하다. 대개 사십오 그램에서 오십오 그램 사이가 그 자리다. 여기서 써 보고 손끝이 답답하면 가볍게, 자꾸 헛디디면 무겁게 옮기면 된다.
손가락마다 힘이 다르다는 문제
자판 위에서 모든 손가락이 똑같이 일하지는 않는다. 검지와 중지는 힘이 세고 자주 움직인다. 약지는 그보다 약하고, 새끼손가락은 가장 약한데도 시프트나 엔터처럼 큰 키를 맡는다. 같은 무게의 스위치를 온 자판에 깔면, 검지에게 알맞은 무게가 새끼손가락에게는 버겁다.
이 불균형을 손보는 사람들이 있다. 새끼손가락이 닿는 바깥쪽 열에만 가벼운 스위치를 넣고, 가운데는 조금 무겁게 두는 식이다. 스페이스바처럼 엄지가 세게 내리치는 자리는 반대로 무겁게 만들기도 한다. 핫스왑 키보드라면 이런 조정이 몇 분이면 끝난다.
굳이 스위치를 바꾸지 않아도 방법은 있다. 새끼손가락이 맡은 키를 칠 때 손목째 살짝 움직여 손 전체의 힘을 실어 주는 습관을 들이면 부담이 크게 준다. 홈 포지션을 지키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다.
스프링만 바꾸는 방법
키압을 정하는 것은 스위치 안의 스프링이다. 나머지 부품은 그대로 두고 스프링만 갈아 끼우면 무게가 달라진다. 스위치를 통째로 새로 사는 것보다 값이 훨씬 덜 들고, 걸림의 성격은 그대로 둔 채 무게만 손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걸림은 마음에 드는데 조금 무겁다 싶을 때 쓰는 방법이다.
다만 손이 제법 간다. 스위치를 열어 안의 부품을 꺼내고, 스프링을 갈아 넣고, 다시 닫아야 한다. 키 하나에 몇 분씩 잡아도 온 자판을 하려면 반나절이 지나간다. 스위치를 여는 전용 집게가 있으면 한결 수월하다.
스프링에는 길이가 다른 것들이 있다. 보통보다 긴 스프링을 넣으면 처음 누르기 시작할 때부터 저항이 붙어서, 같은 무게라도 손끝에는 더 단단하게 느껴진다. 감긴 간격을 위아래 다르게 만든 스프링은 처음에는 부드럽다가 뒤로 갈수록 빠르게 무거워진다. 숫자로 적힌 무게가 같아도 눌리는 동안의 인상이 이렇게 달라진다.
숫자보다 손끝을 믿을 것
키압은 편리한 숫자지만 완전한 설명은 아니다. 같은 사십오 그램이라도 리니어와 택타일은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택타일은 중간의 걸림을 넘느라 순간적으로 힘이 더 들어서, 숫자가 같아도 손끝에는 더 무겁게 남는다. 스프링의 길이와 감긴 모양에 따라 눌리는 내내 무게가 고르게 늘기도 하고, 처음에만 뻑뻑하다가 스르르 풀리기도 한다.
그래서 숫자만 보고 고른 스위치가 기대와 다른 일이 흔하다. 가능하면 여러 축이 나란히 박힌 시험대를 한 번 눌러 보는 편이 백 줄의 설명보다 낫다. 손끝은 그램을 모르지만 무엇이 편한지는 정확히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