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를 알아보다 보면 핫스왑이라는 말이 유난히 자주 눈에 띈다. 같은 모양의 키보드인데 핫스왑이라는 말이 붙으면 값이 조금 더 나가고, 설명에는 자랑스럽게 적혀 있다. 뜨겁게 바꾼다는 뜻으로 읽히는 이름이지만 정작 뜨거운 것과는 관계가 없다. 본디 전원을 켠 채로도 부품을 갈아 끼울 수 있다는 뜻에서 온 말이고, 키보드에서는 뜨거운 인두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통한다.
핫스왑은 스위치를 손으로 뽑고 꽂을 수 있게 만든 구조를 말한다. 이 한 줄이 전부지만, 왜 그것이 대단한 일인지 알려면 그렇지 않은 키보드가 어떤 물건인지부터 봐야 한다.
원래는 납으로 붙어 있었다
기계식 키보드의 스위치는 기판이라는 얇은 판 위에 올라간다. 스위치 아래에는 가느다란 금속 다리가 나와 있고, 이 다리가 기판의 구멍을 통과해 반대편에서 납으로 고정된다. 납땜이라 부르는 작업이다. 한 번 붙으면 단단하고 안정적이다. 수십 년 전부터 이어져 온 방식이고, 지금도 많은 키보드가 이렇게 만들어진다.
문제는 마음이 바뀔 때 생긴다. 조용한 축으로 사 두었는데 막상 쓰다 보니 걸림이 그리워질 수 있다. 여러 해 쓰다 보면 유독 많이 누른 키 하나만 먼저 맛이 가기도 한다. 이때 축을 바꾸려면 붙어 있는 납을 다시 녹여 떼어내야 한다. 인두를 달구고, 녹은 납을 빨아내고, 다리를 뽑고, 새 스위치를 꽂아 다시 붙인다. 팔십여 개의 키를 전부 바꾼다면 같은 일을 팔십여 번 되풀이해야 한다. 손이 미끄러져 기판의 얇은 회로를 건드리면 그 자리는 되살리기 어렵다.
소켓이 하는 일
핫스왑 키보드는 기판에 작은 금속 집게를 미리 달아 둔다. 소켓이라 부르는 부품이다. 납땜은 공장에서 이 소켓에만 해 두고, 스위치는 소켓에 꽂기만 한다. 스위치 다리가 집게 안으로 들어가면 집게가 옆에서 물어 준다. 전기는 그렇게 통하고, 힘을 주어 당기면 다시 빠진다.
덕분에 축을 바꾸는 일이 도구 하나와 몇 분짜리 작업으로 줄어든다. 리니어를 써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택타일로 갈아 끼우면 되고, 스페이스바 자리만 유독 힘이 들면 그 자리에 가벼운 축을 넣을 수도 있다. 키보드 하나로 여러 취향을 시험해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처음 기계식을 들이는 사람에게 핫스왑을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이 내 손에 맞는지는 대개 써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바꿔 끼울 때 알아둘 것
뽑을 때는 뽑개를 쓰는 편이 좋다. 스위치 몸통의 위아래를 집어 곧게 들어 올리는 작은 집게다. 손톱으로 억지로 비틀면 다리가 휘거나 소켓이 함께 딸려 올라올 수 있다. 소켓은 기판에 납땜으로 붙어 있어서, 뜯겨 나가면 그 자리는 결국 납땜으로 고쳐야 한다. 핫스왑의 편함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꽂을 때는 다리부터 살펴야 한다. 상자에서 갓 꺼낸 스위치도 다리가 옆으로 살짝 누워 있는 경우가 있다. 그대로 힘을 주면 다리가 소켓 옆구리에 부딪혀 접히고, 접힌 다리는 겉보기에 멀쩡한데 그 키만 먹통이 된다. 다리 둘이 나란히 곧게 서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휘었으면 족집게로 살살 편 다음 수직으로 눌러 넣는다. 딸깍 하고 자리를 잡는 느낌이 손에 온다.
스위치 아래에는 금속 다리 둘과 가운데의 굵은 플라스틱 기둥 하나만 있는 것과, 그 곁에 가느다란 플라스틱 기둥이 둘 더 붙은 것이 있다. 앞의 것을 삼 핀, 뒤의 것을 오 핀이라 부른다. 더 붙은 두 기둥은 스위치가 비뚤어지지 않게 잡아 주는 역할인데, 기판에 그 구멍이 없으면 들어가지 않는다. 이럴 때는 기둥을 니퍼로 잘라 내고 꽂는다. 잘라도 기능에는 지장이 없다.
핫스왑이 늘 답은 아니다
소켓은 공짜로 얻는 편리함이 아니다. 스위치와 기판 사이에 접점이 하나 더 생기는 구조라, 납땜으로 딱 붙인 것보다 미세하게 덜 단단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소리와 손맛이 조금 다르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다만 그 차이는 대개 미묘한 편이고, 키보드 소리를 좌우하는 것은 그보다 케이스와 폼과 키캡 쪽이 훨씬 크다.
더 현실적인 문제는 수명이다. 집게는 뽑고 꽂기를 되풀이할수록 조금씩 헐거워진다. 몇 번 바꾼다고 어떻게 되지는 않지만, 취향을 찾겠다며 수십 번씩 갈아 끼우면 언젠가 접촉이 불안해지는 자리가 생긴다. 이럴 때는 그 자리만 소켓을 갈아 주면 된다.
결국 핫스왑은 마음을 바꿀 여지를 사는 일이다. 이미 어떤 축이 내 손에 맞는지 확실히 알고 있고 앞으로도 바꿀 생각이 없다면 굳이 필요하지 않다. 반대로 아직 모르겠다면, 그 여지는 값을 치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