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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

첫 기계식 키보드 고르는 법 — 십만 원 아끼는 입문 안내서

타닥 읽을거리 · 2026-07-28

처음 기계식 키보드를 사려고 검색을 시작하면 누구나 같은 벽에 부딪힌다. 청축, 갈축, 마운트, 키캡 재질. 낯선 말이 쏟아지는 사이 가격은 몇만 원에서 몇십만 원까지 벌어진다. 도대체 뭘 보고 골라야 할까.

키보드를 좋아해서 케이스 설계부터 조립까지 직접 해 보기도 한 사람으로서, 결론부터 말하겠다. 첫 키보드는 비쌀 필요가 전혀 없다. 다만 네 가지만 순서대로 따져 보면 된다. 소리, 키압, 배열, 그리고 예산이다.

첫째, 소리부터 정하자

가장 먼저 정할 것은 축이 아니라 이 키보드를 어디서 쓸 것인가다.

사무실이나 도서관처럼 조용한 곳에서 쓴다면 딸깍거리는 클릭 소리가 나는 키보드는 처음부터 후보에서 빼는 게 맞다. 본인에게는 경쾌한 소리가 옆자리 사람에게는 하루 종일 이어지는 소음이 된다. 조용한 축을 골라도 기계식은 생각보다 소리가 있다는 점도 알아 두자.

집에서 혼자 쓴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때부터 소리는 참아야 할 것이 아니라 즐길 거리가 된다. 통통거리는 소리, 서걱거리는 소리, 묵직하게 구르는 소리. 사람마다 좋아하는 결이 다르고, 이 취향을 찾아가는 것이 이 취미의 절반이다.

한 가지 덜 알려진 사실을 보태자면, 키보드 소리는 축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축을 감싸는 하우징이 어떤 재질인지, 스위치가 박히는 보강판이 단단한지 무른지, 속에 폼이 채워져 있는지 비어 있는지에 따라 같은 축도 전혀 다른 소리를 낸다. 그러니 영상으로 들은 소리와 실제 소리가 다르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소리는 키보드 전체가 함께 만드는 것이다.

둘째, 손가락 힘에 맞는 키압

키압은 키 하나를 누르는 데 드는 힘이다. 가벼운 축은 살짝 스치듯 눌러도 들어가고, 무거운 축은 꾹 눌러야 반응한다.

한두 시간 쓸 때는 차이를 잘 못 느낀다. 하지만 하루 종일 글을 쓰거나 코드를 치는 사람이라면 저녁쯤 손가락이 먼저 안다. 너무 무거운 축은 손가락을 지치게 하고, 반대로 너무 가벼운 축은 손을 얹기만 해도 눌려서 오타를 만든다.

정답은 없다. 손가락 힘이 좋은 사람은 무거운 축의 확실한 반발감을 좋아하고, 오래 치는 사람은 가벼운 축의 편안함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첫 키보드일수록 중간쯤 되는 무게에서 시작하는 것이 안전하다. 써 보다가 가볍게 갈지 무겁게 갈지는 그다음에 정해도 늦지 않다.

셋째, 배열은 책상이 정해 준다

배열은 키보드 위에 어떤 키들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느냐의 문제다. 오른쪽에 숫자판까지 갖춘 풀배열, 숫자판 자리를 덜어 낸 텐키리스, 방향키와 기능키까지 글자판 안으로 접어 넣은 미니배열로 나뉜다.

고르는 기준은 간단하다. 숫자를 많이 입력하는 일을 하는가. 회계나 자료 정리처럼 숫자판을 자주 쓴다면 풀배열이 맞다. 그렇지 않다면 텐키리스부터 살펴보길 권한다. 숫자판 자리가 비는 만큼 마우스가 몸 쪽으로 가까워져 어깨가 편해지고, 책상도 넓어진다. 취미로 키보드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텐키리스가 유독 사랑받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미니배열은 예쁘고 아담하지만 방향키와 기능키가 숨어 있어서 손에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린다. 첫 키보드로는 조금 도전적인 선택이다.

넷째, 예산은 십만 원이면 충분하다

이제 제일 궁금할 이야기다. 얼마짜리를 사야 할까.

첫 키보드라면 십만 원 안쪽에서 고르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은 그 가격대에도 만듦새가 좋은 키보드가 많다. 몇십만 원짜리 커스텀 키보드의 세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자기 취향을 정확히 알게 된 다음의 이야기다.

처음부터 비싼 키보드를 사는 것은 와인을 처음 마시는 날 제일 비싼 병을 따는 것과 같다. 좋은 것인지는 알겠는데 뭐가 왜 좋은지 설명할 수 없다. 싼 키보드로 시작해서 소리가 아쉬운지, 키압이 아쉬운지, 손목이 아쉬운지 스스로 알게 되었을 때, 그때 올라가도 전혀 늦지 않다. 오히려 그 순서로 가야 돈이 덜 든다. 제목에 십만 원을 아낀다고 쓴 이유가 이것이다.

마지막으로, 손으로 골라야 한다

네 가지 기준으로 후보를 좁혔다면 마지막은 손이다. 가까운 매장에 가서 직접 눌러 보자. 십 분만 두드려 봐도 영상 백 개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축 이름은 참고일 뿐이라는 것도 이때 알게 된다. 같은 이름의 축이라도 어떤 키보드에 박혀 있느냐에 따라 소리도 감촉도 달라진다. 이름을 외우는 것보다 한 번 직접 타건해 보는 것이 백 번 낫다. 소리는 귀로 듣는 것보다 손끝으로 울리는 것이 더 크게 다가오고, 키압은 숫자가 아니라 감각이라는 것을 손이 먼저 가르쳐 준다.

그렇게 첫 키보드를 들였다면, 새 키보드와 친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많이 쳐 보는 것이다. 좋아하는 글 한 편을 골라 처음부터 끝까지 옮겨 적어 보자. 손에 익는 시간만큼 정직한 것은 없다.

결국 좋은 키보드는 사양표가 아니라 손이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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